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로즈 라이벌리 (문단 편집) == 유래 == 더비 이름의 유래인 [[장미 전쟁]]은 중세시대 15세기 중반 영국에서 일어났던 내전에서 유래되었는데, 영국의 왕위 계승을 둘러싼 [[https://en.wikipedia.org/wiki/House_of_Lancaster|랭커스터 가문]]과 [[https://en.wikipedia.org/wiki/House_of_York|요크 가문]] 사이의 전쟁을 일컫는다. [[십자군 전쟁]]과 [[백년전쟁]]의 패배로 영국 왕권이 약해졌고, 군사력이 막강했던 지방 영주와 귀족들이 왕위쟁탈전에 참여하면서 장미전쟁이 시작되었다. 왕가의 집안싸움을 벌였던 두 가문의 문장이 모두 장미 모양이었기에 이를 '''장미 전쟁'''이라고 부른다. 랭커스터 가문의 상징은 붉은 장미이고, 요크 가문의 상징은 하얀 장미. 장미전쟁의 주인공이었던 랭커스터 가문, 요크 가문 - 두 왕가 모두 플랜태저넷 왕조의 분파이다. ~~ 왕가 집안 싸움 ~~ 영국 플랜터저넷 왕조는 프랑스 지역에 영토([[아키텐]]령 등)를 많이 가지고 있었으며 이는 프랑스 국왕의 직할령과 맞먹었고, 이것이 백년전쟁을 일어났던 요인 중 하나이기도 했다. 영국 플랜태저넷 왕가 영지의 일부였던 [[아키텐]]령의 가스코뉴 지방은 프랑스 남서부의 노른자 같은 땅인데다가 [[http://weekly.donga.com/List/3/all/11/97873/1|지금도 유명한 보르도산 와인이 재배된 [[아키텐]]의 포도주 무역 세금이 영국 전 지방의 세금과 맞먹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풍요로웠기 때문이다.]][* 백년전쟁이 끝난 이후 영국인들은 다시 보르도 와인을 찾았고, 그들이 세계로 뻗어나가던 길([[대영제국]])에는 어김없이 보르도 와인이 뒤따랐으며 이를 통해 보르도 와인은 전 세계 와인의 표준으로 자리 잡게 됐다.] 30년 간의 내전 끝에 랭커스터 가문의 헨리 튜더와 요크 가문의 [[리처드 3세]]가 결전을 벌인 보즈워스 전투에서 [[리처드 3세]]가 전사하면서 [[장미전쟁]]은 막을 내렸고, 왕위는 헨리 튜더([[헨리 7세]])에 돌아갔다. 영국 역사가들은 [[리처드 3세]]의 죽음과 함께 중세 시대가 막을 내렸다고 보고 있으며, 헨리 튜더([[헨리 7세]])가 요크 가문의 [[에드워드 4세]]의 딸 엘리자베스와 결혼하며 [[튜더 왕조]]가 새롭게 열렸다. 그리고 [[장미 전쟁]]의 상징이었던 요크가의 백장미와 랭커스터가의 붉은 장미가 하나로 조합되어 양자 화합의 징표로써 [[https://en.wikipedia.org/wiki/Royal_badges_of_England|튜더 왕조의 문장이 되었다.]] 이 문장을 [[https://en.wikipedia.org/wiki/Tudor_rose|튜더 장미]]라 하며 오늘날 잉글랜드 왕실의 상징이기도 하다. [[장미 전쟁]]으로 수많은 귀족 가문이 얽히고 섥혀, 전쟁이 끝난 후 살아남은 귀족 가문은 전쟁 전의 3할에 불과해 [[튜더 왕조]]의 군주들은 절대 왕권의 파워를 휘두를 수 있었지만, 동시에 전쟁으로 왕가의 손도 귀해져 [[엘리자베스 1세]] 이후로는 직계 후손이 없어 [[튜더 왕조]]는 단절되고 만다. 이 전쟁은 랭커스터 가문의 승리로 끝났기 때문에, 이후로 지금까지 랭커스터 공작이라는 칭호는 영국 국왕이 보유한 비공식 칭호들 중 하나로 간주된다. 반면 랭커스터 가문의 맞수였던 [[요크]] 가문의 요크 공작은 영국 국왕의 둘째 아들에게 부여하는 칭호가 되었다. 이 관행에 따라 [[엘리자베스 2세]] 여왕(랭커스터 공작)의 둘째 아들인 [[앤드루 앨버트 크리스티안 에드워드|앤드루 왕자]]가 [[요크 공작]]의 칭호를 쓰고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